2009년 06월 13일
김용민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에 대한 대답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20대는 88만원 세대이고 IMF 세대이며 청년실업자 집단에 "희망이 없는 너희"다.
이 글은 김용민이 쓴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세상의 소식을 내가 신뢰하는 몇 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얻는다.
김용민이 진행하는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가 어땠는지,
그 방송 이후 김용민이 어떤 수모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바로 그 김용민이 20대를 향해 어떤 글을 썼는지도, 모두 이 사이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몇 개의 유명한 인터넷 공간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라면 읽기도 전에 짐작할만한, 아주 흔한 일들이다.
사람들이 세상의 갖가지 소식을 물고 와 열정적으로 소개한다.
그러면 댓글 혹은 먼댓글의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의 감상과 의견이 달리고 곧잘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주제는 다양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연애, 오락, 신변잡기 등이 제각각 비슷한 빈도로 올라온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무심한듯 쉬크하게, 하지만 열심히 만들었다는 게 은근히 티나게 소개한다.
그러면 댓글 혹은 먼댓글의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의 감상과 의견이 이어지고
곧잘 그 창작물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이 올라온다.
주제와 형태는 다양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연애, 오락, 신변잡기 등이
글, 동영상, 움짤, 음악, 프로그램, 게임, 사진, 포스터 등의 형태로 제작되어 제각각 비슷한 빈도로 올라온다.
인터넷은 보통 나이를 밝히지 않는 공간이지만
저 수많은 인터넷 활동의 주인공이 상당수 20대일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김용민은 20대들을 만나는 대학교수이고,
문화업계에 종사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이고,
인터넷에도 자기 둥지를 튼 블로거라 들었는데,
어째서 그가 몸 담고 있는 그 모든 세상 속에
이미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목소리를 있는 힘껏 내지르고 있는 20대들이 그토록 안 보이고 안 들릴 수 있을까?
김용민에게 존재를 확인받으려면 반드시 촛불을 들고 시위현장에 나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의 무력진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동영상 속 군화발에 차인 대학생도,
광우병 관련 MBC 100분 토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금도 고생 엄청 하고 있다는 고려대 학생도,
경찰 방패에 무참히 박살난 카메라를 끝까지 쥔 채 인터넷 보도를 했던 대학생도,
이명박과 한승수 앞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열변을 토한 댓가로 협박을 받았던 대학생도,
좌빨 학교 한번 살려보겠다고 만화 그리고 시위하고 서명 받으러 뛰어다니는 대학생도,
김용민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존재들이지 않은가?
앞으로 시위현장에 나간 20대 대학생들은 어떻게든 김용민을 찾아 꼭 출석도장을 받아오길 바란다.
"희망없는 너희들"이란 소리를 듣기 싫다면 말이다.
아니, 사실은, 지금껏 시위 한번 안 나가본 대학생이라해도 김용민의 저런 비난을 참고 들어줄 이유는 전혀 없다.
김용민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80년대 대학생들의 데모는
20대가 정치에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며, 실은 더 이상 효과적인 방식도 아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데모가 갖고 있는 어두운 면, 즉, 폭력성과 획일성, 남성우월주의를 대학가에서 지워내려고
1990년대 대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실험과 도전, 시행착오를 겪어야했는지는 보아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2000년대의 대학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바로 여기 생생하게 현존하는 20대들을
뜨고는 있으되 보이지는 않는 모양인 어두운 눈으로 애써 무시하면서,
"80년대 대학생들이 2009년에 부활"하길 바란다는 소리나 하고 앉아있는 건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만드는 짓이다.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김용민이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애들"이 만드는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 공간이 더 이상 '대학'이 아닐 뿐이다.
김용민의 뜨고는 있으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눈과,
아마도 80년대 대학졸업과 동시에 성찰과 학습을 멈춘 듯한 무딘 감성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그러나 매우 찾기 쉬운 곳들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비아냥이 아닌 진심인데,
함부로 반말하지 말길 바란다. 대단한 실례다.
인터넷처럼 공개된 공간에서도 "너희" "애들"이란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교수라면,
자기 권력 안에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다는 건지 상상만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 by | 2009/06/13 17:25 | 기타 등등 | 트랙백(3)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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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뻘글 쌌다가 똥같은 리플받고 진정한뒤에 글쓰려고 합니다OTL
가슴아파하고 괴로와할줄 알았다.
거만함을 느껴? 불쾌해?
그래.. 무슨 희망을 '너희'에게 걸겠니.
접자 접어.
그래도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 있죠.. 어떤 세대를, 또는 어떤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화용론적 맥락에서 보면 꽝인듯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지금의 대학생들이 80년대의 대학생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주도해서 시위현장에 많이 나타나는 게 정말로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20대가 왜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지 궁금하다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진지하게 학습해야 하는 거겠죠. 20대와 소통이 하고 싶었다면요. 내 눈 앞에 안 보인다고 그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20대 중에는 사회문제 토론하고 대안 고민하는 애들도 있어"라는 대답보다는, "지금의 20대가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어" 라는 대답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 공간이 더 이상 '대학'이 아닐 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금의 20대 대학생들은 아무것도 안했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되는건가요. 님이 말씀하신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그 공간이 대학이 아닌 어느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 말씀좀 해주시면 좀 공부좀 하겠습니다.
글의 본질은 안보이고 그저 말투가 반말이어서 기분이 나쁘다?? 에휴.... 저 교수의 20대에겐 희망이 없다는 말에 반박을 하려면 20대는 이러이러한 점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데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다는 말을 하셔야죠.......
님이 20대이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그리고 물어보신,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 말인데요..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김용민에게는 크게 세 개의 정체성이 있죠. 대학교수, 라디오 진행자, 블로거(이제는 인터넷 논객).
만일 그가 대학교수로서, 수업시간에 저 글과 똑같은 말을 학생들에게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학생들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학생을 성폭행한 교수 한 명 처벌하는데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매달려 몇달씩 노력해야 간신히 처벌할까말까한 경직된 대학사회에서?
그가 라디오에서 저 글과 똑같은 말을 했다고 칩시다. 청취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죠? 기껏해야 방송국에 전화해 항의하거나, 진행자의 주소를 어렵게 알아내 편지를 보내는 정도겠죠. 청취자들끼리 서로 토론을 하며 생각을 발전시켜나가긴 힘듭니다.
그리고 김용민은 이 글을 "인터넷"이란 공간에 올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논점님이 제 블로그에 오셔서 글을 지적하고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실 수 있는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토론하면서, 원한다면 서명운동이나 성명서 등을 통해 글쓴이와 강제력있는 대화도 시도할 수도 있죠. 이만하면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의 훌륭한 사례 아닙니까?
두눈 뜨고 똑똑히 보쇼. 개무시당했던 20대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세워나가는지.